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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방문한 코엑스 영풍이 기존의 2층 넓은 매장을 버리고 단촐한 옆 매장으로 이사한 걸 알게됐다. 기존 매장도 사실 반디 시절의 매장보다 맘에는 안들었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넓은 이과/공학 영역은 꽤 괜찮았는데... 역시 신세계가 코엑스를 먹으면서 가운데 거대한 책 구조물을 설치한게 서점 유입 고객에 꽤 악영향을 미친 것 같다. (거기에 코엑스 자체가 뻘짓으로 자신의 위치를 깍아먹는 짓을 한 것도 꽤 크겠지)


여튼 회의와 회의 사이에 지친 마음을 달래러 들린 서점은 너무 작아져서... 책들이 분야에 맞지도 않게 낑겨져 있었다. ㅇㅇ 너무 코엑스 영풍을 책은 안 사고 구경만 하고 다녔나 싶은 (내가 얼마나 원인을 제공했겠냐 만은 -_-) 생각이 들어서 둘어보다가 간만에 국내 학자가 쓴 사회학 책을 사서 나왔다. 그래도 이 작은 영풍 매장은 안 날아가길 바라며 말이다.


책은 정말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시민이라는 이름의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기 위해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구성이었다. 다만 여러 영역을 건들다보니 깊이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빠르게 한번 한번 터치터치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게 머가 중요하겠는가? 저자가 생각하는 내용이 너무 안타깝게 와 닿아서 슬픈 느낌이었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에 가능한 그 근저에 있는 프레이밍과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깊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혐오조장이나 자기개발만능주의조장, 을을싸움을 시키려고 하는 부단한 노력들.


마지막 단원에서 저자가 얘기한 내용은 그래도 꽤 와 닿았다. 말로 해주는 시원함 같은 것. 비판은 비판으로 중요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계적 중립을 얘기하는 가증스러움에 대한 일침.


김기덕 감독 부분은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도 하게했다. 요즘 미투 운동으로 밝혀진 치부가 글을 쓴 당시에 저자가 바라보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듯 하다. 물론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 하기 위한 김기덕에 대한 비난의 부당성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기덕이 성평등에 전혀 감수성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사실 전 세대의 운동권이 많은 부분 그러하고 그것이 지금 터져나오는 것이리라. 진보 영역 안에 잠재되어 있던 보이지 않던 불평등 요소가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나고 잘 고쳐지고 좀 더 나은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희망해보고 있기에 김기덕에 대한 책의 부분은 사실 내용 상은 별 것이 아니었음에도 꽤 다른 글들을 찾아보게 했다.


여튼 간만에 책을 한 권 완독하니 좋았다. 사면서 부터 쉽게 읽으리라고 생각했던 거긴 하지만 -_-; 사실 지금은 완독을 좀 쌓아갈 필요가 있다. 한동안 책을 멀리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Posted by 릴라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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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y Bianchi of Emory University

http://www.psychologicalscience.org/index.php/news/releases/entering-adulthood-in-a-recession-linked-to-lower-narcissism-later-life.html


초기 성년기에 경제불황(혹은 경기후퇴)를 경험한 세대는 나르시즘 경향이 완화되고 주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반면 다른 연구에서는 청소년기에 경제불황을 겪을 경우 공격성이 증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 관심을 가질 부분은 청소년기 이후에도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는 점이며 대부분 초기에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는 이론에 대한 반박으로 활용되고 있다. 

Posted by 릴라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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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상이란 걸 파악하는 건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제대로 보기 전까지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하이에크에 대한 정형근 교수의 설명을 듣고 우파적 시각에서 하이에크의 저작들을 소개한 내용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 그게 질문이 아니다. 세상에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아니 그것도 아니다. 세상에 유토피아를 가져오려고 노력할 가치는 있는가? 난 끌린다면 여전히 유토피아는 불가능하지만 그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길(어쩌면 끝나지 않는)이 좀 더 나은(나에게 나은이란 적절한 노동과 적절한 여가가 있는 삶, 인류가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는 가치와 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적절히 쓰일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것을 통해 좀 더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의미한다... 이것도 불명확하군 -_-)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로버트미헬스의 마지막 결론 처럼 말이다.

Posted by 릴라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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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할로라는 심리학자이자 영장류 연구자가 아동의 모성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설계한 실험이다. 푹신하고 정서적 안정을 주는 모형 어미와 먹을 것을 주는 철사 어미 사이에서 행동을 확인하는 것이 실험의 내용이다. 결과는 다들 아는 것처럼 먹을 것을 주는 어미에서는 먹이만 먹고 (1시간 이하의 접촉) 정서적 안정을 주는 어미에게 애착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더 나가서 정서적 안정을 주는 어미에 고통 행동을 설정했을 때도 애착 행동을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왠지 뒤에 실험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동진 씨의 말처럼 지금 눈 앞에 동물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대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슬픔에도... 해야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언어를 잃어버리는 것은 생각 마저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니까 말이다. 

Posted by 릴라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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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와 관련된 유명한 실험이라고 해서 찾아보니 간단하게 말해서 10분 안에 자유롭게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하고 이때 뇌전도를 채크하는 실험이었다. 대강 실험 결과는 0.75초 전에 뇌에 먼저 어떤 전기적 신호가 있었다라는 거고 이것을 통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이미 뇌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생각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자유의지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마도 그 당시의 자유의지에 대한 어떤 주장(아마도 뇌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며 이것이 자유의지이다라는 주장이었겠지...)에 반박하는 실험이었겠지만... 이게 자유의지에 대한 반박이 될까? 요즘 읽고 있는 죽음에 대한 책에서 (켈리 세이건이라는 철학자가 쓴 책이다) 느껴지는 거부감은 그런 것일꺼다. 물리주의자라고 스스로 얘기하는 그가 반대하는 방식이 무언가 엇나가있다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기계가 감정을 느끼는 부분에 대하여 SF소설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던지 말이다) 그 느낌이 이 실험에서도 느껴진다. 과연 자유의지가 있는가라는게 실험하기 어려운 주제이긴 하지만 이건 자유의지 자체에 대한 반박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어떤 이원론자가 주장한 주장에 대한 반박 정도의 실험일꺼 같다. 차라리... 스텐리 밀그램의 실험이 더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릴라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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